1. 서론: 나바테아 문명과 두샤라 신앙
고대 나바테아인(Nabataeans)은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요르단,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지역에서 번성한 상업 중심의 문명을 형성하였다. 특히 나바테아인의 수도인 **페트라(Petra)**는 뛰어난 건축 기술과 정교한 수로 시스템으로 유명한데, 이는 단순한 도시를 넘어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다. 나바테아인들은 거친 사막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신앙 체계를 구축했다.
그들의 최고 신인 **두샤라(Dushara)**는 사막의 바위에서 태어난 신으로, 자연을 다스리고 인간에게 가호를 내리는 존재였다. 두샤라는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이지만, 바위와 돌을 통해 인간 세계와 연결된다고 믿어졌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신념을 넘어, 나바테아인들이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려 했던 철학적인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다.
나바테아인들의 삶에서 두샤라는 단순한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이자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신적인 존재였다. 그렇다면 이들의 신화 속에서 두샤라는 어떻게 인간과 연결되었으며, 어떤 방식으로 신과 인간이 소통했을까? 본 글에서는 나바테아인들의 두샤라 신앙과 인간-신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2. 두샤라의 신화: 바위에서 태어난 신과 신성한 자연
나바테아인들의 최고신인 두샤라는 바위에서 태어난 신으로 묘사된다. 이 전설은 단순한 신화적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상 나바테아인들이 살아가던 환경과 깊은 연관이 있다.
사막에서 물과 생명은 극도로 귀중한 자원이었다. 나바테아인들은 바위산을 깎아 물 저장소를 만들고, 정교한 수로를 통해 빗물을 모았다. 이러한 기술적 업적이 있었기에 사막에서도 번성할 수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바위와 물은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다. 두샤라가 바위에서 태어나고, 생명의 원천인 물을 주관하는 신으로 자리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신성한 바위와 두샤라의 형상
나바테아인들은 두샤라를 숭배할 때, 일반적인 신상(조각상) 대신 **신성한 돌(Betyl, 베이틸)**을 사용했다. 이는 "신은 인간의 형상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사상이 반영된 것이며,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신의 존재를 느끼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페트라 곳곳에서 발견된 신성한 돌들은 특정한 신전이 아닌, 자연 속 바위 위에 놓여 있었다. 이는 나바테아인들에게 자연 자체가 신의 일부라는 믿음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두샤라는 형상을 가지지 않아도 신성한 돌과 바위에 깃들어 인간과 소통하는 존재였다.
3. 인간과 두샤라의 관계: 신의 가호와 제사 의식
나바테아인들은 두샤라에게 신의 가호를 얻기 위한 다양한 제사 의식을 거행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예식이 아니라, 인간이 신과 소통하는 중요한 방법이었다.
* 두샤라 신전에 바쳐진 제물과 의식
나바테아인들은 페트라와 그 주변 지역에 두샤라를 위한 신전을 건설했으며, 이곳에서 주기적인 제사와 희생 제물이 바쳐졌다.
- 희생 제물: 신에게 가호를 받기 위해, 양, 염소, 낙타 등의 동물을 제물로 바쳤다. 이는 신에게 인간의 감사를 전하는 동시에, 신과 인간 사이의 계약을 의미했다.
- 가뭄을 극복하는 기도 의식: 사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의 시기에는, 바위 위에서 신성한 의식을 거행하며 두샤라가 비를 내리도록 기도했다.
이러한 의식은 나바테아인들이 단순히 신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신과 인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형성했음을 보여준다. 인간이 신에게 공물을 바치면, 신은 이에 대한 응답으로 보호와 풍요를 약속하는 방식이다.
4. 두샤라 신앙의 변화와 인간의 역할
시간이 지나면서 나바테아 문명은 로마 제국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고, 이에 따라 두샤라 신앙도 변화했다.
*두샤라의 형상화: 신과 인간의 가까운 관계
초기 나바테아인들은 두샤라를 형상화하지 않았으나, 로마의 영향을 받은 이후에는 젊은 전사 혹은 수염이 난 신의 모습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는 신과 인간의 관계가 더욱 친밀한 형태로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 로마 문화와 융합되면서, 두샤라는 단순한 자연의 신에서 전쟁과 보호의 신으로도 숭배되기 시작했다.
- 나바테아인들은 점점 신을 인간처럼 표현하며, 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는 과정을 경험했다.
이는 종교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개념임을 보여준다.
5. 결론: 인간과 초자연적 존재의 상호작용
나바테아인들의 두샤라 신앙은 단순한 신화일 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반영한 종교적 철학이다.
- 자연과 신이 하나라는 개념: 두샤라는 바위에서 태어난 신이며, 이는 나바테아인들이 자연 속에서 신의 존재를 찾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신과 인간의 상호작용: 두샤라는 일방적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제사와 기도를 통해 신과 대화할 수 있는 존재였다.
- 시대에 따른 변화: 로마 제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두샤라는 더욱 인간적인 형상으로 변하며 인간과 가까워지는 신으로 발전했다.
결국, 나바테아인들의 신앙은 신이 인간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신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유지되었다. 두샤라의 전설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고를 담고 있다.
이처럼 고대 신앙과 신화는 오늘날에도 많은 의미를 남긴다. 종교적 신념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하더라도, 인간과 초자연적 존재의 관계는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발전하는 살아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